02. 도착은 했는데
신비한 감정사전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고 둘째 날인 나의 첫 사진이다. 아름다운 카탈루냐 광장처럼 보이지만 세상 힘든 일을 겪고 어렵게나마 건진 사진이다. 첫날은 사진이 없다. 도착한 시간은 어두운 밤이고, 보다폰에서 유심을 살 수 없기에 숙소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미리 저장해둔 지도 사진으로 충분히 찾아갈 수 있으리라 했던 생각은 금물이었다. 평소에 월등한 방향감각으로 단 한 번도 길을 잃어본 적 없다지만, 나의 첫 유럽에서 신고식을 당한 셈이다. 꽉 찬 캐리어와 배낭으로 대충 30kg가량 소지하며 메인광장을 누비니 땀은 쏟아지고 (심지어 캐리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한 여름에 무거운 청바지와 겉옷을 입었기에 땀이 거하게 흘렀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진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왜?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공교롭게도 모든 사람들이 관광객이라 도긴개긴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이게 다 경험인 거라고, 숙소에 들어가면 뿌듯할 거라는 무모한 합리화를 반복하는 거다.
학교 딸린 집
월 900 유로면 월 130만 원이고 한 5개월 산다고 가정하면 보증금 뺀 월세로만 650만 원이라는 재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학교 안에 있고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뭐 이해하려 해도, 평균적인 시세에 따르면 옳지 못한 선택이다. 하지만, 직접 와서 방을 구하고 싶기도 했고, 첫 한 달은 다른 것 신경 쓰지 않고 학교와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일단 살아보려 한다, 다시 또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으니까.
원래 여기 살아요?
그렇게 짐 정리를 마치고 배는 고픈데 요리 경험치라곤 라면밖에 없다. 장 보러 가기에는 아직 낯간지럽고 환전해온 현금은 많으니까 근처 음식점을 가는 게 현명해 보인다. 그렇게 구글맵을 뒤지다가 찾은 곳이 'Chico Bar'이다. 여럿 의미가 있지만 친구, 남자애, 여러분처럼 첫 음식점은 친근한 이름으로 골라본다.
아직 네이버가 편한 토종 한국인은 '음식 주문 스페인어로'를 검색하고 자연스럽게(?) 야외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마치 어제도 들렸던 단골처럼, 생활에 익숙해져 여유로운 사람처럼.
Carrer de Mandri, 29, 08022 Barcelona, 스페인
스페인 음식이 매우 짜다는 말들에 잔뜩 긴장하고서 맥주부터 시킨다.
그렇게 처음 주문한 음식은 Patata bravas_4.5€ 와 Huevos rotos con jamón_14€이다. Patata는 감자이고, Bravas는 소스 이름이다. 쉽게 말해 휴게소 통감자를 Bravas소스(식당마다 맛이 다르지만 얼추 미트볼 소스와 마요네즈를 섞은 것 같다)에 찍어 먹는 느낌이다. 두 번째 음식은 Huevos(계란을) rotos(부숴) con Jamón(하몽이랑 같이). 스페인어는 참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다. 한국어로 이름 짓자면 '잘게 썰린 감튀와 하몽 그리고 반숙 범벅' 쯤 될 것이다.
김치가 있었다면 3그릇은 더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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